종로·을지로·퇴계로 이름의 유래, 서울 도심 지명에 담긴 역사
서울 도심을 걷다 보면 종로, 을지로, 퇴계로 같은 이름을 너무 자연스럽게 지나칩니다. 지하철역 이름으로도 익숙하고, 약속 장소로도 자주 쓰이다 보니 오히려 “왜 이런 이름일까?” 하고 멈춰 생각할 일이 많지 않습니다.
저도 종로는 대충 종과 관련이 있겠다고 짐작했지만, 을지로와 퇴계로는 이름의 유래를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을지문덕과 퇴계 이황이 떠오르긴 했지만, 왜 하필 서울 도심 거리 이름이 되었는지는 따로 찾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료를 따라가 보니 세 거리의 배경은 서로 달랐습니다. 종로는 조선 시대 종루, 즉 보신각의 종소리와 연결되어 있고, 을지로와 퇴계로는 1946년 일제강점기 지명을 바꾸는 과정에서 새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을지로와 퇴계로가 같은 날인 1946년 10월 1일에 개칭되었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황금정, 본정처럼 일본식으로 불리던 지명을 우리 역사 속 인물의 이름으로 바꾼 것이었습니다.
익숙한 거리 이름인데, 알고 보니 조선의 시간 질서와 광복 직후의 지명 정비가 함께 들어 있더라구요. 한 번 알고 나면 같은 길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1. 종로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요?
종로라는 이름은 비교적 직관적입니다. 한자로 보면 종(鐘)의 길(路), 즉 종이 있던 길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은 조선 시대 종루, 지금의 보신각과 연결됩니다. 보신각의 종은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도구가 아니라, 도성의 하루 리듬을 정하는 중요한 신호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새벽에 종을 쳐서 성문을 열고, 밤에는 다시 종을 쳐서 성문을 닫았습니다. 지금처럼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종소리는 도시 전체가 함께 듣는 공공 신호였습니다.
처음에는 종로라는 이름을 너무 당연하게만 봤습니다. 그런데 보신각 종소리가 성문 개폐와 통행 시간까지 알려주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알고 나니, 이름이 훨씬 구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종로 일대는 조선 시대부터 상업과 사람의 이동이 활발한 공간이었습니다. 운종가와 피맛골 같은 이름도 이 지역의 오래된 도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결국 종로라는 이름에는 단순한 장소 표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조선 도성의 시간, 통행, 상업 활동이 모두 종소리와 함께 움직이던 기억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
2. 을지로와 퇴계로는 왜 1946년에 이름이 바뀌었을까요?
을지로와 퇴계로는 종로와 배경이 조금 다릅니다. 이 두 거리 이름은 조선 시대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진 이름이라기보다, 광복 직후 지명 정비 과정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을지로 일대는 황금정(黃金町)이라는 일본식 지명으로 불렸습니다. 퇴계로 일대는 본정(本町)으로 불렸습니다. 둘 다 일본식 행정 지명 체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서울에서는 이런 지명을 바꾸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그중 1946년 10월 1일, 황금정은 을지로로, 본정은 퇴계로로 바뀌었습니다.
이 부분은 꽤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단순히 낡은 이름을 새 이름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식민지 시기의 지명을 걷어내고 한국 역사 속 인물의 이름을 도심의 도로명으로 세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을지로는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에서, 퇴계로는 조선 성리학자 퇴계 이황에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한쪽은 전쟁사의 인물이고, 다른 한쪽은 학문과 사상의 인물이라는 점도 흥미로웠습니다.
서울 도심의 이름을 바꾸는 일은 지도 위 글자를 바꾸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도시가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지 정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3. 을지로 이름의 주인공, 을지문덕은 누구일까요?
을지로의 이름은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에서 왔습니다. 을지문덕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은 612년 살수대첩입니다.
살수대첩은 고구려가 수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친 전투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수나라 양제가 보낸 대군을 상대로 을지문덕이 지략을 발휘해 승리를 거둔 사건입니다.
원문에는 수나라 30만 대군을 격파했다는 설명이 들어 있었습니다. 숫자의 정확한 해석은 사료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가 있지만, 을지문덕이 고구려를 대표하는 전략가로 기억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1946년에 서울의 거리 이름으로 을지문덕을 선택한 것도 이런 상징성과 관련이 있어 보였습니다. 광복 직후 일본식 지명을 바꾸면서, 외세에 맞선 고구려 장군의 이름을 도심 도로명으로 삼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을지로라는 이름을 너무 익숙하게만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이름의 배경을 알고 나니, 이 거리가 단순한 상업지구 이름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을지로라는 이름은 고구려의 역사적 기억을 서울 도심 한복판에 남겨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4. 퇴계로 이름의 주인공, 퇴계 이황은 누구일까요?
퇴계로의 이름은 퇴계 이황에서 왔습니다. 퇴계는 이황의 호이고, 이황은 조선 성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이황은 1501년에 태어나 157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조선의 학문과 정치 문화에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오늘날 1,000원 지폐 속 인물로도 익숙합니다.
퇴계 이황은 성리학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깊이 연구하고 체계화한 학자로 평가됩니다. 『성학십도』 같은 저작도 그의 사상을 이해할 때 자주 언급됩니다.
퇴계로가 원래 본정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1946년의 개칭은 단순한 도로명 변경 이상으로 보입니다. 조선의 학문과 정신을 대표하는 인물의 이름을 서울 도심의 길에 붙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을지로와 퇴계로가 함께 바뀐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쪽은 고구려의 장군, 다른 한쪽은 조선의 학자입니다. 서로 다른 시대와 분야의 인물이 서울 도심의 거리 이름으로 나란히 남은 셈입니다.
그래서 퇴계로라는 이름은 단순히 학자의 이름을 딴 도로가 아니라, 광복 이후 서울이 어떤 역사적 기억을 되살리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지명으로 볼 수 있습니다.
5. 세 거리 이름을 비교하면 무엇이 보일까요?
종로, 을지로, 퇴계로는 모두 서울 도심의 주요 거리지만 이름이 만들어진 배경은 서로 다릅니다. 종로는 조선 시대의 종루와 연결되고, 을지로와 퇴계로는 광복 직후 개칭과 연결됩니다.
아래 표를 보면 세 거리 이름의 유래가 조금 더 한눈에 들어옵니다.
| 거리 | 이름의 근거 | 이전 이름 | 개칭 시점 | 기념 인물 / 사물 |
|---|---|---|---|---|
| 종로 | 종루, 보신각의 종소리 | 종로 | 조선 시대부터 사용 | 보신각 종 |
| 을지로 | 을지문덕 장군 | 황금정(黃金町) | 1946년 10월 1일 | 612년 살수대첩으로 알려진 고구려 장군 |
| 퇴계로 | 퇴계 이황의 호 | 본정(本町) | 1946년 10월 1일 | 조선 성리학자, 1,000원 지폐 인물 |
표로 놓고 보니 종로와 을지로·퇴계로의 차이가 보였습니다. 종로는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이름이고, 을지로와 퇴계로는 광복 이후 일본식 지명을 바꾼 결과였습니다.
또 하나 눈에 들어온 것은 을지로와 퇴계로가 같은 날 개칭되었다는 점입니다. 1946년 10월 1일이라는 날짜는 서울의 도심 지명이 어떻게 다시 정리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점처럼 보였습니다.
6. 서울 지명은 왜 알고 보면 다르게 보일까요?
지명은 너무 익숙해서 배경을 모르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 번 뜻을 알고 나면 그 장소를 보는 느낌이 조금 달라집니다.
종로는 보신각 종소리와 조선 도성의 시간 질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을지로는 살수대첩으로 알려진 고구려 장군 을지문덕을 떠올리게 하고, 퇴계로는 조선 성리학자 퇴계 이황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세 이름은 모두 서로 다른 역사 층위를 갖고 있습니다. 조선의 도성 운영, 고구려의 전쟁사, 조선의 학문 전통, 그리고 광복 직후의 지명 정비가 한 도심 안에 함께 남아 있는 것입니다.
물론 매번 거리를 걸을 때마다 이런 의미를 의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알고 난 뒤에는 지하철역 이름이나 도로 표지판이 조금은 다르게 보입니다.
저도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를 단순한 서울 중심가 이름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따라가 보니 서울 도심이 생각보다 오래된 기억을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종로·을지로·퇴계로의 이름을 찾아보면서, 익숙한 지명에도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종로는 조선 도성의 종소리와 연결되고, 을지로와 퇴계로는 광복 직후 일본식 지명을 바꾸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다음에 이 거리를 지날 때는 단순한 도로명으로만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보신각의 종, 을지문덕의 이름, 퇴계 이황의 호가 서울 도심의 길 위에 남아 있다는 걸 알고 걷는 것만으로도 도시가 조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